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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야기

설거지 많이 하는 사람이 그릇도 자주 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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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9-05-02


설거지 많이 하는 사람이 그릇도 자주 깬다


업무가 늘수록 챙길 것이 많아지고 그러다 보면 자연 실수가 생길 확률이 높아진다. 여기서 ‘업무’를 ‘배란’으로 ‘실수’를 ‘유전자 돌연변이’로 바꾸면 난소암의 발생 원인을 이해가기가 쉬워 진다.


여성 난소에서 일어나는 배란은 난소 표면의 상피세포가 미세하게 터지면서 난자가 난소 바깥으로 배출되고 이후 손상 부위가 다시 치유 재생되는 과정인데 이 과정이 수백 번 반복되다 보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 종양으로 진행된다는 가설(지속배란 가설, Incessant ovulation hypothesis)과 같은 맥락이 되는 것이다.


난소암은 유전적인 종류도 있고 여성 호르몬의 영향도 받기 때문에 모든 난소암이 이 원인으로 생긴다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역학연구나 동물실험 결과는 지속 배란과 난소암 발병 사이의 상당한 연관성을 보여 주고 있다.

 

역학(疫學) 연구란 질병을 가진 환자의 특성을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연구로 난소암 발병 위험이 높은 경우를 임신 출산이 한번도 없는 여성, 초경이 빠르고 폐경이 늦어 배란을 상대적으로 많이 한 여성, 불임치료를 위해 과배란 약제를 투여 받은 여성 등을 들고 있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 사태 때 난자 기증에 대한 윤리적 문제가 제기 된 것도 난자 기증이 비록 본인 의사에 따른 것이라도 난소암 발병과 같은 장기적 영향에 대한 인식이나 설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매일 산란하는 닭의 경우 이와 같은 연관성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데, 산란이 멈춘 노계(老鷄)의 난소암 자연 발생율은 40% 가까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런 특징 때문에 난소암 연구의 재료로 쓰이기도 한다. 

 

거꾸로 지속배란을 막는 방법은 난소암의 발병 위험을 낮추는 방법이 된다. 출산을 많이 할수록 난소암의 위험도는 낮아지는데, 임신 기간 동안과 수유기 초기까지 배란이 억제 되기 때문이다.

또한 먹는 피임약을 장기간 복용하는 경우도 난소암의 발병 위험이 줄어든다. 역시 피임약이 배란을 억제하고 결과적으로 난소 상피세포의 손상과 유전자 돌연변이가 일어날 확률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지속배란과는 다른 이야기지만 비만한 여성이 난소암 위험도가 더 높고 저지방 식이를 하는 여성,야채, 과일을 많이 섭취하는 여성은 난소암 위험도가 더 낮다. 

 

난소암은 다량의 복수가 잘 생기고 세포가 쉽게 퍼져나가는 질병의 특징 상 뱃속 다른 장기에 전이가 되어 발견 되는 경우가 많다. 정기 검진 프로그램이 잘 확립된 자궁경부암은 1기 환자가 많고 치료도 잘 되는 반면 난소암은 진단 당시에 3기 이상의 진행성인 환자가 많아 치료도 어렵고 재발도 흔하다. 

 

정기 검진법이 확립되어 있지는 않지만 질을 통해서 촬영하는 골반초음파 검사가 아직까지는 가장 효과적인 검사로 인정 받고 있다. 골반초음파 검사도 시술 받는 환자의 입장에서는 부담이 되는 검사가 되겠지만 초음파 검사는 이른바 비침습적 검사(바늘로 찌르거나 째지 않는 검사)로서 검사 자체의 통증은 없기 때문에 건강 검진 시에 꼭 해보는 것이 좋다. 

 

이런 예방 노력과 정기 검진에도 불구하고 난소암이 발병했다면 즉각적으로 수술을 받아야 한다. 난소암은 다른 장기의 암과는 달리 많이 진행된 경우라도 반드시 수술을 하는 것이 원칙이다. 수술은 부인종양 전문의는 물론이고 외과, 비뇨기과, 흉부외과 등 치료팀이 유기적으로 구성된 병원에서 받는 것이 좋다. 

이는 장이나 복막, 간 등 다른 장기에 전이된 병소라도 최대한 절제를 했을 경우 생존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종양제거수술 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잔류 세포들을 없애기 위한 항암화학요법을 받는 것으로 치료가 이어지게 된다. 

 

난소암의 치료 과정은 말 그대로 멀고 험하다. 이 어려운 과정을 잘 이겨 내기 위해서는 본인 굳은 의지를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료진과 가족들이 환자의 불안한 마음을 이해해 주고 지속적으로 용기를 북돋우어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특히 항암치료 기간은 장기전이고 독성이 누적되므로 심신 쇠약이 극심해진다. 가까이에서 말을 건네고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해 주는 가족과 여성의 몸과 마음을 헤아리는 암치료 경험이 많은 의료진이 꼭 필요한 이유다.


글·주웅 이대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