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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야기

우리나라 최초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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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9-05-02


우리나라 최초 의사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의학 의사가 여의사인가?'라는 의문이 생겼다. 최초라는 말은 오직 한 사람에게만 쓸 수 있기 때문에 그 중요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나는 2017년 이화여대 의료원의 전신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병원인 보구녀관(普救女館)의 설립 130주년을 앞두고 병원장으로서 무거운 사명감을 갖고 이 문제에 접근하게 되었다.


서재필, 김익남, 김점동(박에스더), 박서양 등이 현재까지 서양의학과 관련해 '최초'의 수식어가 붙는 분들이다. 1893년 미국 컬럼비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면허를 획득한 서재필 박사는 미국 국적을 가진 한국인 최초의 서양의학 의사라고 정리된다. 실패한 개혁혁명이었던 갑신정변 주동자였기 때문에 미국인으로 귀화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이 안타까웠고 또한 이해되었다.


김익남 선생은 한국 국적으로 1897년 일본 도쿄 지케이의원 의학교를 졸업하고 수련 과정을 거친 후 1899년 국내로 복귀해 군의관과 의학교 교관으로 활동했다. 다만 김익남 선생은 의사면허 격인 '의술개업인허장'을 취득하지 않아 1900년 의사가 되는 김점동 박사가 남녀 통틀어 한국 국적 최초의 서양의학 의사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당시 의료 환경을 고려해보면 의술개업인허장이 요즘 의사면허와 비슷하다고 해석하기는 어려워 김익남 선생이 우리나라 국적의 최초 의사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백정 출신으로 제중원을 졸업한 박서양 선생은 우리나라 의료기관이 배출한 최초의 의사라는 점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위에 언급된 네 사람은 구한말 개혁 혁명, 일제 합병, 핍박받는 조선 여성 등 격변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어떻든 김점동 박사가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임은 논쟁의 여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활동한 시기 또한 일본·중국의 최초 여의사보다 먼저였다. 그는 1887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병원인 보구녀관에서 미국인 의료 선교 여의사의 보조 역할을 했고, 1900년에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다시 보구녀관의 책임 의사로 근무하는 등 의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 당시 두 차례 노벨상을 수상한 퀴리 부인보다 열 살이나 어린 나이였다고 하니 조선 여성의 우수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최근 의대생의 수에서 여초 현상이 나타나고 의료계에서도 여성들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글·유경하 이대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