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건강이야기

[주웅교수의 굿모닝 미즈] ‘25시간 5분대기조’ 노릇… 분만실 운영 쉽지 않아
파일
  • 파일이 없습니다.
  • 등록일 2009-03-10
제목 없음

 

[주웅교수의 굿모닝 미즈]

‘25시간 5분대기조’ 노릇… 분만실 운영 쉽지 않아

 

 

ROTC 장교 출신의 후배가 얼마 전 득남을 하였다. 축하 전화를 하면서 진통 진행과 분만 과정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아기의 탯줄을 직접 자를 수 있어서 기뻤다는 후일담과 함께 10개 동안 산전 진찰을 해 주시던 원장님이 아닌 다른 선생님이 아기를 받아 주셔서 조금 아쉬웠다는 소감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오랫동안 익숙해 있었던 한마디 설명을 듣고 금방 상황을 알아채고는 전화기 너머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 원장님이 일년 내내 5분 대기조를 할 수는 없잖아!”

 

장면 #2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EBS 방송을 보게 되었다. 가운 입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길래 ‘명의(名醫)’ 프로그램 방영 중이구나 하며 관심 있게 보다가 이내 프로그램 제목이 명의가 아니고 ‘극한 직업(Extreme Job)’이라는 것, 주인공은 만성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흉부외과 전공의라는 사실을 알고 쓴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흉부외과와 함께 전공의 지원 기피과의 대표 주자인 산부인과 의사로서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었다.

 

전국 산부인과 의원의 실태를 보고하는 통계에 분만을 하지 않는 병의원의 비율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산부인과 의원에서 분만을 하지 않는다고 하면 마치 안과에서 눈을 치료하지 않고 이비인후과에서 귀, 코를 치료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처럼 이상하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산부인과 의사가 분만실을 운영한다는 것은 진료과목에 충실한다는 원칙을 넘어 하루 25시간, 일주일에 8일, 일년 53주 동안 5분 대기를 해야 한다는 과도한 부담을 떠안는다는 의미임을 알고 통계 자료를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 사람이 하기는 물론 불가능하므로 몇몇이 대기조를 짤 수도 있지만 문제는 아기가 언제쯤 나올지를 알 수 없다는 데에 있다.

 

당직 의사의 감(感)으로만 보자면 아기는 주로 새벽 시간에, 연휴 때에, 중요한 약속이 있을 때, 혹은 너무 피곤해서 쉬고 싶은 날에 나오는 것 같다. 분만실 운영은 보통의 각오로는 할 수 없는 현실, 시간을 담보해야만 하는 이러한 근무 패턴이 젊은 의사들이 산부인과를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

 

때문에 자신의 시간을 환자를 위한 기회 비용으로 여길 수 있다는 최소한의 각오 없이는 분만실 운영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예쁜 아기들의 첫 순간을 보는 데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병원에서 환자복을 입은 채로 환하게 웃고 다니는 사람들이 바로 산모들이고, 난(蘭) 화분보다 장미꽃 바구니가 더 많이 배달되는 곳이 바로 산과 병동이다. 이런 분위기가 좋아 산부인과를 선택하고 또 산과를 전공하는 의사들을 여럿 본 것 같다.

 

우리가 언제까지나 저출산, 인구 감소를 걱정하고 있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 경제가 다시 성장세로 돌아서고 살기 좋은 나라가 되어 또 한번의 베이비 붐이 일 그날을,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소임을 다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산부인과 의사들과 함께 기원해 본다.

 

 

이대여성암전문병원 부인암센터 주 웅 교수